
아기가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주변 물건을 잡기 시작하면서 집 안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난감 바구니에 넣어둔 장난감은 물론이고 책이며 기저귀며 손에 잡히는 것은 모조리 꺼내 놓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정리해 두었는데 잠깐 한눈을 팔고 나면 주변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꺼내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아기는 단순히 물건을 꺼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꺼낸 물건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거나 입에 넣어보기도 하며 나름대로 바쁘게 탐색하고 있었다. 어른에게는 정리해야 할 물건이지만 아기에게는 세상을 알아가는 새로운 놀이였던 것이다.
1. 7~8개월 아기는 왜 물건을 자꾸 꺼낼까?
아기가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물건을 잡는 능력이 발달하면서부터 장난감이나 책, 기저귀처럼 손에 잡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찾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꺼냈다. 바구니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고, 주변에 있는 물건에도 손을 뻗고, 꺼낼 것이 없어질 때까지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아기가 손을 뻗어 물건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행동은 어른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아기에게는 손과 눈을 함께 사용하고 자신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생후 7~8개월 무렵에는 물건을 잡고 흔들거나 두드리고,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거나 입으로 가져가며 주변을 탐색하는 행동이 활발해진다. 물건마다 모양과 촉감, 무게,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 아기도 물건을 꺼낸 뒤 가만히 관찰하거나 손으로 만져보고 입에 가져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특히 책은 다른 물건보다 오래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이 있어서인지 한 장면을 빤히 바라보기도 하고, 책장을 만지거나 입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어른이 보기에는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아기에게는 그 모든 행동이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아직 물건을 용도에 맞게 정교하게 사용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만지고 흔들고 꺼내고 입으로 탐색하는 행동 자체가 놀이가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아기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물건을 꺼내는 이유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기가 주변 물건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손을 뻗는 것은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그저 집 안을 어지럽히는 행동으로만 보였지만, 아기가 무엇을 꺼내고 어떻게 살펴보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꺼내고, 만지고, 입에 넣는 모든 것이 아기의 놀이
신기했던 것은 아기가 물건을 꺼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나를 꺼내면 그 물건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으로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입에 가져가기도 했다. 어떤 물건은 금방 흥미를 잃고 옆으로 밀어놓았지만, 어떤 물건은 유독 오래 붙잡고 있었다. 어른이라면 이미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끼지 않을 물건도 아기에게는 처음 보는 세상의 일부일 것이다. 손으로 만지면 어떤 느낌인지, 흔들면 소리가 나는지, 바닥에 내려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알아가는 중인 셈이다. 아기가 물건을 꺼내고 떨어뜨리거나 두드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손을 움직였더니 물건이 바구니 밖으로 나왔고, 바닥에 떨어뜨렸더니 아래로 내려갔으며, 두드렸더니 소리가 났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주변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행동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다. 물론 물건을 몇 번 꺼낸다고 해서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탐색은 인지 발달과 감각 경험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물건이 담긴 상자나 바구니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안에 있던 물건을 밖으로 꺼내면 안쪽이 비어 보이고, 물건이 사라진 자리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아기에게는 단순히 물건을 꺼내는 행동이 아니라 안과 밖,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보이는 것의 변화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특별한 발달 신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손에 잡히는 것이 재미있어서, 부모가 반응해 주는 것이 좋아서, 그저 반복하는 행동 자체가 즐거워서 계속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기가 물건을 꺼내는 모습을 무조건 막기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충분히 탐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큰 천 장난감이나 아기용 공을 바구니에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게 해도 좋고, 안전한 큰 용기에 물건을 넣었다가 꺼내는 놀이를 해도 좋다. 아기가 물건을 꺼낼 때 “인형이 나왔네”, “이번에는 공을 잡았구나” 하고 말해주면 부모와 함께하는 상호작용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직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는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의 다양한 물건을 직접 경험하는 일이 아기에게는 중요한 놀이가 될 수 있다.
3. 집은 엉망진창이지만 이해하게 된 귀여운 우리 아기의 행동
처음에는 아기가 물건을 꺼내놓을 때마다 정리할 생각부터 들었다. 장난감을 바구니에 넣어두면 다시 꺼내고, 책을 꽂아두면 하나씩 빼내고, 기저귀를 정리해 놓으면 어느새 손을 뻗어 꺼내 놓았다. 아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 사이 얼른 정리해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쩌면 아기에게는 엄마가 다시 넣어놓은 물건을 또 꺼내는 것까지 하나의 반복 놀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정말 왜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명 물건을 꺼내놓는다고 해서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꺼낸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왜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아기가 조금씩 주변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게 된 뒤에도 가끔 물건을 꺼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말을 듣지 않거나 일부러 어지럽히는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른처럼 물건을 용도에 맞게 정교하게 가지고 놀기 어려운 나이에는 꺼내고, 만지고, 옮기고, 어지르는 행동 자체가 충분히 재미있는 놀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에게는 장난감 바구니를 비우는 일이 엄마가 정리해 놓은 것을 망가뜨리는 일이 아니라, 손으로 물건을 꺼내고 주변을 탐색하는 경험일 것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고 나니 물건이 어질러져 있는 모습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매번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위험한 물건은 미리 치워두고, 책이나 기저귀처럼 꺼내도 안전한 물건을 정해두거나 아기가 탐색할 수 있는 바구니를 따로 마련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기가 놀고 난 뒤에는 함께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아직 정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어른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놀이와 정리를 천천히 경험하게 해주는 편이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아기가 무엇을 꺼내고, 어떻게 살펴보고, 어떤 물건에 오래 관심을 보이는지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매일 비슷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도 아기가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있을 테고, 어제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도 보일 것이다. 예전에는 어질러진 물건부터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그 물건을 하나씩 꺼내며 집중하는 아기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기가 세상을 배우는 방법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돈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손으로 물건을 꺼내고 관찰하며 반복하는 그 시간도 분명 아기의 성장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기가 자라면서 새롭게 할 수 있는 행동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만큼 부모가 정리해야 할 일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물건을 꺼내고 살펴보는 행동이 아기에게는 세상을 알아가는 놀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예전보다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오늘도 바닥에 물건이 한가득 놓여 있다면, 그 작은 손이 무엇을 발견하고 있는지 잠깐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어쩌면 어질러진 집 안 한가운데에서 아기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는 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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