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뒤집기와 되집기가 끝나고 나면 아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이제 조금 편하게 누워 있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잡으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바닥을 밀면서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때부터 또 궁금해진다. “우리 아기는 언제 배밀이를 하지?” “네발기기는 언제 시작할까?” 하고 말이다.
아기의 배밀이는 보통 생후 6~8개월 전후, 네발기기는 7~10개월 전후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시기일 뿐이다. 어떤 아기는 배밀이를 먼저 하고 네발기기로 넘어가고, 어떤 아기는 배밀이를 거의 하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 네발기기를 하지 않고 잡고 서기와 걷기로 넘어가는 아기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는지가 아니라, 아기가 자신의 몸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인 것 같다.
1. 배밀이는 아기의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배밀이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름의 준비 과정이 있다. 엎드려서 고개를 들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팔로 바닥을 밀면서 가슴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움직이는데 앞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팔과 다리를 함께 사용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배밀이를 도와주고 싶어서 부모가 다리를 움직여주거나 발바닥을 받쳐주는 방법도 있지만, 결국 가장 큰 동력은 아기가 무언가를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장난감이나 엄마가 조금 앞에 있으면 손을 뻗어보고, 닿지 않으면 몸을 움직여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동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아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놓아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너무 멀리 두어서 아기가 좌절하게 만들기보다는 조금만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정도가 적당하다.
우리 아기는 호기심이 정말 많았다. 특히 장난감이나 젖병처럼 본인이 원하는 것이 눈앞에 보이면 어떻게든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5개월쯤 되집기를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배밀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움직이는 정도였는데, 며칠 지나자 정말 눈에 띄게 이동 범위가 넓어졌다. 잠깐 한눈을 팔면 조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없었다. 그때부터는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기 전에 주변을 한 번씩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2. 네발기기는 언제 시작할까? 우리 아기는 꽤 늦게 시작했다
배밀이를 시작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네발기기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배밀이를 한참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엉덩이를 들고 네발 자세를 만들고, 앞뒤로 흔들다가 앞으로 기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아기들이 그런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네발기기 전에는 엉덩이를 들고 무릎을 바닥에 대거나 네발 자세에서 앞뒤로 흔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아기는 달랐다. 배밀이로 못 가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배밀이 속도가 워낙 빨라서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니 아기 입장에서는 굳이 힘들게 네발기기를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밀이 이후에는 스스로 앉기도 했고, 가구를 잡고 일어서기도 했다. 손을 잡아주면 걷기도 했다. 그런데도 네발기기는 하지 않았다. 주변 아기들이 하나둘 네발로 기기 시작하니 괜히 우리 아이만 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기는 과정을 건너뛰는 건 아닐까?’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고, 발달 순서를 다시 확인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찾아볼수록 아기들의 발달에는 생각보다 정해진 순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갑자기 시작했다. 9개월쯤 되던 어느 날, 우리 아기가 네발로 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때 이미 혼자 일어나서 무언가를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네발기기를 시작한 시점에는 오히려 ‘이제 와서 기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동안 기다렸던 부모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기는 자기에게 필요한 시기에 자기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3. 배밀이와 네발기기보다 중요한 것은 아기의 전체적인 발달 과정
아기를 키우다 보면 자꾸 다른 아기와 비교하게 된다. 누구는 6개월에 배밀이를 시작했다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이고, 누구는 8개월에 네발기기를 했다는데 우리 아이는 앉아서 놀기만 한다. 특히 인터넷이나 육아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월령의 아기들이 새로운 동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배밀이와 네발기기는 모든 아기가 반드시 같은 순서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아니다. 배밀이를 먼저 하는 아기도 있고, 네발기기를 먼저 하는 아기도 있으며, 두 동작을 거의 하지 않고 잡고 서거나 걷기로 넘어가는 아기도 있다. 우리 아기처럼 배밀이 → 앉기 → 잡고 서기 → 손잡고 걷기 → 네발기기라는 조금 독특한 순서로 발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아직 네발기기를 안 하지?’라고 걱정했던 시간이 조금 아깝기도 하다. 아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배밀이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익히고 있었고, 앉아서 균형을 잡고 있었고, 가구를 잡고 일어서면서 다리에 힘을 기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발달 순서와 달랐을 뿐, 아기는 나름대로 다음 단계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쪽 팔이나 다리만 계속 사용하거나 몸이 지나치게 뻣뻣하거나 축 처지는 경우, 이전에 할 수 있던 동작을 갑자기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처럼 전체적인 운동 발달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단순히 “우리 아기는 아직 배밀이를 안 해요”, “네발기기를 안 해요”라는 이유만으로 발달이 늦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아기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기에게도 나름의 속도와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꾸 ‘다음 단계’를 기다리지만 아기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밀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집 안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네발기기를 기다릴 때는 괜히 조급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 아기는 자기에게 편한 방법으로 움직이다가 필요해진 순간 네발기기까지 해냈다.
그래서 지금은 아기가 무엇을 몇 개월에 했는지보다 무엇인가를 향해 손을 뻗고, 몸을 움직이고, 넘어졌다가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더 눈여겨보게 된다. 배밀이를 하든 네발로 기든,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이동하든 아기가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밀이와 네발기기를 시작했다면 부모가 해야 할 일도 하나 더 늘어난다. 바로 집안 안전점검이다.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정말 빠르게 멀리 간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물건이나 동전, 건전지, 약, 세제 같은 물건은 미리 치워두고 콘센트와 전선, 계단, 서랍, 모서리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특히 네발기기를 시작하면 이동 범위가 갑자기 넓어지기 때문에 발달을 기다리는 것만큼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배밀이와 네발기기는 ‘몇 개월에 해야 한다’는 숙제라기보다 아기가 세상을 향해 조금씩 움직여가는 과정인 것 같다. 우리 아기는 네발기기보다 먼저 서고 걸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아기에게는 아기만의 발달 순서가 있었고, 엄마는 그 모습을 조금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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